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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명주(시인)
달팽이 두 마리가 붙어있다 …… 일생이 노숙이었으므로 온 몸이 맨살 혹은 속살이었으므로 상처이었으므로 부끄럼이었으므로 덮어준다는 것, 사람으로 말하면 무슨 체위로 말해질 저 흘레의 자세가 아름다운 것은 덮어준다는 그 동작 때문이겠다 맨살로 벽을 더듬는 움막 속의 나날 다시 돌아서면 벽뿐인 생애를 또 기어서 가야 하는 길이므로 내가 너를 네가 나를 덮어 줄 수 있는 지금 여기가 지옥이더라도 신혼방이겠다 …… 복효근, 〈덮어준다는 것〉 부분
또 한 해가 갑니다. 지나간 달력을 한 장 한 장 넘겨봅니다. 장장마다 기록되어 있는 사연들과 행사를 알리는 동그라미 표시가 그 날의 기억을 알리듯 무리지어 피어 있습니다. 별표를 간직한 저 날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행복했던 시간들, 우울했던 순간들, 우리에게 일어났던 많은 일들이 세월이라는 넓은 바다에 띄워지니 일엽편주 같습니다. 그 작은 배를 타고 출렁출렁 우리는 얼마나 심하게 요동쳤던가요. 저녁에는 녹초가 되어 잠자리에 들고, 아침에는 무거운 몸을 끌고 다시 일터로 향합니다. 바쁜 와중 문득문득 사는 게 뭔지, 눈물겹습니다. 그러나, 그렇지만요. 그대가 있기에 케이크 위에서 흔들리는 저 작은 촛불만큼의 온기와 밝음만 있어도 지탱되는 삶이라고 다시 웃습니다. 위안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제 저녁에 덮고 잔 이불속에서 오늘 아침을 맞이한다죠. 어제와 오늘 사이에 밤이 있다는 사실이 희망이라죠. 파지를 동여매느라 몸을 구부리고 있는 노파의 등 뒤로 징글벨 징글벨 캐롤이 울려 퍼집니다. 누군가에게는 성탄의 찬가가 누군가에게는 징하도록 크고 심한 소음이 되는군요. 수레를 끌고 가는 저 노파의 굽은 삶도 내년에는 조금 펴지겠지요. 그 희망마저 없다면 사는 게 무간지옥처럼 얼마나 힘이 들까요? 또 하나 나이테가 늘었나요. 적당한 자리 옹이도 생겼겠네요. 유년시절 김장독을 묻고 단지 뚜껑 위에 담요를 덮어주던 어머니의 정성처럼, 자박자박 눈길을 뚫고 가서 고단한 당신 손 잡아봅니다. 고맙습니다. 올해 못한 일들, 올해 미루었던 꿈들, 올해 차마 하지 못한 고백까지 내년을 기약할게요. 구세군 종소리가 커져갑니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아지겠죠. 희망이 첫눈처럼 소복이 어깨를 덮어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