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소식지 : 189 호

詩의 풍경 <8> 기도하는 시간

 

 

진명주(시인)

 

...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
바다에 다 와가는 저문 강의 발원지를 상상하기만 해도
별똥별의 앞쪽을 조금 더 주시하기만 해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나의 죽음은 언제나 나의 삶과 동행하고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정하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고개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기만 해도
             이문재, 〈오래된 기도〉 부분

 


신발이 삭았다. 산에 올라가서야 알았다. 1년 남짓 신발장 안에 방치하였더니 이리 덜컥 저를 놓는다. 가까이는 집 뒷산부터 멀리 키나발루 4천m 고지의 산으로 안내하던 든든하고 미더운 등산화가 아니었던가. 황당함이 이내 미안함으로 바뀐다. 나를 떠메고 걷느라 얼마나 숨이 찼었을까? 응급처방으로 끈을 구해 덜렁거리는 밑창을 묶는다. 끈을 묶기 위해 한쪽 무릎 끓은 이 순간만은 온전히 너를 위한 시간이다. 산 중턱 누군가가 쌓아올린 돌무더기.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은다. 하나하나 쌓아올린 돌탑 위에 고맙다. 수고했다. 작은 돌멩이를 얹는다. 
불편하게 걷다보니 불편하게 마음에 남아 있는 맨발의 아이들이 떠오른다. 고 이태석 신부의 추모영화 〈울지마 톤즈〉에 나오는 수단의 아이들이다. 떠난 신부를 위해 아이들이 부르던 눈물의 송가. 그의 죽음이 그의 삶과 동행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을 통해 깨달았었다. 나의 삶은, 나의 일상은 신발장 안 신발처럼 내 삶만 정리하며 문 닫아 버린 것은 아닌가? 그러다 어느 한 날 신발의 밑창처럼 내 삶이 남의 아픔을 저 홀로 삭도록, 삭아 손 놓도록 방치하는 것은 아닌가? 자각이 돋는다. 떨림이여 커져라. 큰 원으로 퍼져라. 나무의 새 순들이 어느 사이 제 몸을 붉혀 산에 오른 사람들을 즐겁게 만든다. 내 삶이 내 이웃을 향해 저처럼 강렬하게 불 타 오른 적이 있던가? 기도하고 마음 나눈 적이 있던가?
허리를 구부려 절을 하는 산사의 부부를 따라 나도 깊숙이 허리를 구부린다.  지극히 단순하고 경건한 이 행위. 눈을 감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평화가 생긴다. 손만 잡아도, 바라보기만 해도 기도가 된다니. 밥물을 붓고 전원을 누르듯,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듯, 나의 손이 세상의 손 하나를 감싼다. 사랑해 속삭인다. 세상의 손 하나가 내 손을 감싼다. 사랑해 대답한다. 평온이 따뜻한 물처럼 마음 가득 차오른다. 기도가 내 자신이나 가족을 위한 시간에서 벗어나 남을 위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작은 소통의 시작인 것을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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