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소식지 : 188 호

詩의 풍경 <7> 길 위에서의 명상

 


 

진명주(시인)

 

 

나는 구부러진 길이 좋다.
구부러진 길을 가면
나비의 밥그릇 같은 민들레를 만날 수 있고
감자를 심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날이 저물면 울타리 너머로 밥 먹으라고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중략...)
그 구부러진 길처럼 살아온 사람이 나는 또한 좋다.
반듯한 길 쉽게 살아온 사람보다
흙투성이 감자처럼 울퉁불퉁 살아온 사람의
구불구불 구부러진 삶이 좋다.
구부러진 주름살에 가족을 품고 이웃을 품고 가는
구부러진 길 같은 사람이 좋다.
             이준관, 〈구부러진 길〉 부분

 

 

 

길 옆은 황금물결이다. 장마와 태풍을 견딘 모습들이 까불까불 가실 볕을 즐기고 있다. 밭둑에서 자신이 일군 실한 농작물을 바라보는 얼굴 그을린 촌부. 그간의 고통을 잊은 듯 그 또한 흡족한 표정이다.
네비게이션보다 감이나 기억이 먼저 찾아내는 구부러진 길을 돌아서자 풀잎처럼 친구가 웃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의 압이 차올라 구부러진 길을 돌다 그 자리 그대로 눌러 앉은 지가 햇수로 팔년. 친구는 이곳에 터를 잡은 이유를 내게 말하지 않았다. 나도 굳이 이곳에 터를 잡은 이유를 묻지 않았다. 단지 독을 우려해 도려내던 싹이 실한 감자를 만들더라고 해마다 늘어나는 감자의 상자를 바라보며 그가 도려내고 싶던 싹이 어느 사이 어떤 결실을 이룬 것에 대한 변화를 느낄 뿐이다. 쌓아놓은 감자 상자를 손짓하며 그가 또 다시 씨익, 웃는다.
친구의 손이 거칠어질수록 친구가 구부러진 길과 닮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벌레가 싫어 화분 하나 키우지 않던 그가 그 곱던 손으로 온갖 벌레를 키우는 흙 속에서 감자를 들어올린다. 시간 대부분을 흙을 일구며 나비나 새와 소통하며 나무를 가꾸며 바람을 품는 너른 가슴으로 변하였다. 마당에서 친구들과 놀이를 하던 어린 것이 친구의 품으로 솔개처럼 날아든다. 그가 이 구부러진 길에 들어 얻은 가장 큰 수확이다. 어린 것을 추켜올리자 까르르 웃는 어린 것의 잇몸이 그의 잇몸과 함께 주변을 환하게 만든다.
독도 싹도 다스리기 나름이라는 이치를 알려주는 친구. 백미러 속에서 팝콘같이 환히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다. 세상에 지쳐 숨고르기를 하고 싶은 날 나는 이 구부러진 길과 이 길을 닮은 친구를 다시 찾으리라.
고속의 엘리베이터 안의 공기는 얼마나 건조한지. 올라타서는 아래, 위 층 통성명 없이 저마다 제가 누른 빨간 버튼의 불이 들어올 때를 기다리며 부동자세로 서 있다가 사라지는 사람들. 언제부터인지 엘리베이터 안에 서면 저 구부러진 길모퉁이에 서 있는 달맞이꽃이 보드라운 노오란 입술을 오므렸다 폈다 하는 모습이나, 벅찬 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달그락거리던 달개비꽃의 수줍은 얼굴이 떠오른다. 그런 날은 저녁을 먹으며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앞만 보고 달리는 일이 멀미가 나지 않느냐고, 나비의 소담한 밥그릇으로 변하는 민들레가 지천인 곳을 알고 있는데 혹여 그런 곳에서 살고 싶지 않냐고 넌지시 운을 띄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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