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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살던 그때, 가을 나락이 고개를 숙이던 어느 날 점심시간에 친구들과 함께 땅콩을 캐 먹기 위해 학교 밖으로 나갔다가 그만 옆 동네 다른 농가의 사과나무 밭에 들어가 몇 개를 슬쩍 따먹다가 들켜버렸다. 말이 ‘서리’지 우리 3명은 졸지에 도둑놈이 돼버린 것이다. 세 놈이 한꺼번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가 느닷없이 사과밭 주인아저씨한테 붙잡혀 절도범이 되어 학교로 끌려왔으니 선생님의 실망과 충격은 말할 수 없이 컸으리라. 담임을 맡으신지 1년이 다 지나도록 매 한번 들어보지 않으셨던 선생님이 그날 처음으로 회초리를 들었다. 실컷 맞아도 할 말이 없었으니 집에 돌아간 나는 아버지한테 이실직고했다. 그리고 아버지한테 다시 한번 매를 맞아야 했다. 그런데 다음날, 청소를 마친 뒤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선생님이 나를 부르셨다. 교무실에 갔더니 짚 꾸러미에 계란 두 줄(20개)과 거무스레한 통이 놓여져 있었다. 그건 꿀통이었다. 그때 우리 집은 봄에 아카시아와 여름 가을에 잡화 꿀 양봉을 했었는데 아들놈이 속을 썩혀드려 죄송하다며 부모님이 선생님께 보내신 것이다. 선생님은 내게 어머님께 드리라며 봉투를 하나 주셨다. 집에 돌아가 그걸 어머니께 드리자 어머니는 깜짝 놀라셨다. 그건 돈이었다. 흰 갱지에 쓰인 편지에는 “꿀과 계란 감사합니다. 어머님의 정성이 담긴 선물이니 제가 물릴 수는 없고…. 대신 값을 쳐드리긴 하지만 혹시 부족하지는 않을런지요”라는 내용이었다. 다시금 너무 존경스러웠다. “니눔 때문에 선생님이 어제 우신 거 아나 이눔 자슥아?” 어머니는 내게 다시 꾸중하셨다. 고개를 숙인 나는 아무 말도 못했다. 비록 배운 것은 없지만 늘 선생님의 가르침이라면 하늘의 뜻이려니 하며 철석같이 믿으신 부모님들이었다. 그래서 4남매 아들딸이 조금이라도 삐딱하게 굴면 당장 손목을 잡아채고 “니 선생님께 가자. 선생님께 여쭤보자”는 것이 부모님의 교육방식 중 하나였을 정도다. 은사님은 몇 년 전 가을 찬바람에 낙엽이 흩날리던 그때, 바람처럼 떠나셨다. 마음속으로나마 나에게 삶의 나침반이 되어 주셨던 선생님께 다시 감사드리고 싶다.
정 진 혁 (학장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