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소식지 : 185 호

詩의 풍경 <4> - 숨결

 

 

 

진명주(시인)


밤새 비 내린 아침
옥수수 거친 밑동마다
애기 손톱만한 싹이 돋아났다
지가 잡초인 줄도 모르고
금세 뽑혀질지도 모르고
어쩌자고 막무가내로 얼굴 내밀었나
밤새 잠도 안 자고 안간힘을 썼겠지
푸른 심줄 투성이, 저 징그러운 것들,
생각하니 눈물 난다

누구 하나 건드리지 않고
무엇 하나 요구하지 않고
스스로 그러하게 솟아오른
저 순한 새순 앞에
우리네 시끌벅적한 생애는
얼마나 엄살투성이인가
(.................)
             김해자 〈스스로 그러하게〉 부분

 

 

 


깊은 밤 빗소리에 잠이 깬다. 베란다 창을 닫지 않은 게다. 화분 속 어린 것들이 몸을 떨고 있다. 창을 닫고 안부를 확인하다보니 이미 잠은 저만치 달아났다. 어떤 떨림 하나가 흔들다 놓았는가. 파르르 작은 전율이 베란다 가득 내려 앉는다. 난데없이 퇴근길 보았던 애기똥풀의 안부가 궁금하다. 아파트 화단 덩치들 틈에서 노오란 꽃등을 피어 올렸다고 내 발길을 잡았었다. 12층 창밖은 절해고도. 어둠 뿐이다. 베란다 창을 열고 목을 빼어 내려다본다. 요동치는 풍선인형처럼 이리저리 몸을 흔드는 나무들의 세찬 움직임만 보일 뿐이다. 애기똥풀은 무사할까? 배를 밀며 기어가던 땅강아지는 어디로 갔을까? 음식물 쓰레기통 주변을 빙빙 돌던 수많은 날파리들도 자취를 감췄겠다. 빗소리에 깨인 이 여름 한 밤이 어느 목숨들에게는 전생애가 되었으리.
작은 수반 앞에 쪼그리고 앉는다. 깎아 놓은 엄지손톱만큼 작고 가는 구피 세 마리. 지느러미만 흔들 뿐 움직이지 않는다. 자는 것일까? 수반을 톡톡 쳐본다. 누가 단잠을 방해하냐고 뾰로통 기척을 한다. 새벽 3시. 아직도 잠이 들지 않은 것인지, 아님 일찍 일어난 겐지. 뒷동 한 집에 불이 켜져 있다. 반갑다. 고맙습니다. 누구인지 모를 대상에게 마음의 배꼽인사를 한다. 당신이 깨어 있어 이 밤 저 나무처럼 저 풀들처럼 의지가 되네요. 당신이 불 밝혀 주어 이 깊은 적막 속 길을 잃지 않겠네요. 빗소리가 커지다가 줄어든다. 바람이 불다가 멈추고 멈췄다가는 이내 다시 더세게 분다. 제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떨어지는 나뭇잎들이 바람 속을 떠다닌다.
언제쯤에야 너에게 기쁨에 겨워 메일을 보낼 수 있을까? 그 문장을 마지막으로 친구는 아직도 사는 일이 기쁘지 않은가보다. 친구의 소식을 기다리는 나나 여전히 소식 없는 친구나 저 비바람 속 서 있는 애기똥풀에 비한다면 우리네 삶의 투정은 얼마나 심한 엄살이던가. 잠은 사라지고 창에 부딪치는 빗줄기만 물끄러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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