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소식지 : 185 호

사랑은 속아 주는 것

 

 

 

 저녁 식사를 물린 뒤, 중학생 아이가 슬그머니 다가오더니 이웃집에 영빈이라는 친구가 있는데 버스나 전철 안에서, 혹은 길거리 육교 밑 지하도 같은 곳에서 동냥하는 노숙자들을 만나면 단 한번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단돈 100원이라도 도와준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제 겨우 14살 먹은 중학교 1학년 아이인데 그렇게 행동한다는 게 참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나아가 영빈이의 꿈은 나중에 사회복지 일을 하고 싶단다.
온 나라 아이들이 연예인 되겠다, 판검사 되겠다고 하는 판국에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는 어린 아이가 있다니 참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웃집 아이이지만 기특했고 약간 조숙하다는 느낌도 들었고….
그렇다고 영빈이 엄마가 딸 자랑을 하거나 잘난 체를 하는 그런 분이 아니었다. 워낙 공손하시고 겸손하셔서 동네에서도 영빈 엄마는 현모양처 스타일이라고 다들 입을 모은다.
나는 영빈이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부터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다. 단돈 100원이라도 그분들의 손에 쥐어드려야겠다는 마음으로. 어린이한테서 어른인 내가 가르침을 얻은 것이랄까.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일렀다. 거기에 사용한 돈은 용돈에 포함시켜서 따로 더 주겠다고 했더니 아이들도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그로부터 열흘쯤 뒤의 일이다. 전철을 타고 돌아오는 길인데 10대 후반의 청년이 승객들에게 쪽지를 돌리기 시작했다. 영빈이 이야기가 떠올라 찬찬히 읽어보았다. 서툰 글씨로 아버지와 둘이서 어렵게 살고 있다는 슬픈 사연이 적혀 있었다.
영빈이라면 어떻게 할까 생각하니 답이 나왔다. 언제나 환하게 웃는 영빈이, 사랑을 베푸는 데 있어서 계산하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실천하는 아름다운 마음씨를 지닌 영빈이 말이었다. 지갑에서 천원짜리 두 장을 꺼내 그에게 주었다. 그러자 나를 향해 몸을 90도 각도로 굽히는 것이었다.
영빈이 덕분에 좋은 일 하고 나니 나 스스로도 한없이 행복한 마음이 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거 줘봤자 전부 다 속는 거라며 헛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설사 그 사람들한테 내가 속는다 할지라도 내가 인정을 베푸는 순간 내가 행복하고, 그 사람이 행복하면 더 바랄 게 없다고…. 사랑은 원래 속아주는 거라고….

 

황 은 숙
(괘법동)

OPEN 출처표시, 상업용금지, 변경금지 :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제4유형)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4유형: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