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명주(시인)
이른 아침 문자 메시지가 온다 -나지금입사시험보러간다잘보라고해줘너의그말이꼭필요해 모르는 사람이다 다시 봐도 모르는 사람이다 메시지를 삭제하려는 순간 지하철 안에서 전화기를 생명처럼 잡고 있는 절박한 젊은이가 보인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신도 사람도 믿지 않아 잡을 검불조차 없었다 그 긴장을 못 이겨 아무 데서나 꾸벅꾸벅 졸았다 답장을 쓴다 -시험꼭잘보세요행운을빕니다! 조은, 〈동질(同質)〉 전문

오월은 우리 인생의 청춘을 닮았다. 가로수들은 제 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간을 뽐낼 채비에 들떠 하루종일 신명으로 제 여린 가지를 흔든다.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의 옷차림이나 발걸음도 무거움은 날려 버린 듯 밝고 경쾌한 모습이다. 고개를 숙이고 앞서 걷는 조카는 사람들을 보고 눈도 맞추지 않는다. 어디서부터 어긋난 것인지 그의 근심을 나는 알 수 없다. 단지 성급한 위안이 못이 될까 싶어 쉽게 아는 체하지 않는다. 좀 쉬었다 가자는 소리를 들었을까. 바닥만 보며 내쳐걷던 조카가 멈춰선다. 나무의자에 앉아 턱까지 찬 숨을 고른다. 곁에 앉은 조카도 가쁜 숨을 토하더니 이내 훅, 하고 울음을 쏟아 놓는다. 불과 몇 주 전만 해도 여리디여린 잎 사이로 빈 가지들이 보이더니만 산은 어느 사이 무성하게 우거져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나무그늘이 가만히 조카의 슬픔을 덮어준다. 계곡도 물소리를 만든다. 청설모만 어쩔까 눈치보다 뿌르르 가던 길을 달려갈 뿐이다. 내어준 어깨가 따스해진다. 너나없이 왜 없을까. 푸르르던 시절, 눈물 쏟을 일들. 한때 푸르지 않고 한때 중심이지 않던 이가 어디 있을까? 마냥 푸르기만 할 것 같던 인생이 턱턱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그 자리 눈물방울처럼 작은 옹이가 자리한다. 그 좌절의 시간을 거쳐야만 비로소 청춘의 야문 이름이 꽃으로 피어나리라. 신은 공평하다. 열정과 지혜를 한꺼번에 주지 않는다. 그때 누군가가 내어주던 손길, 따뜻한 관심의 말 한마디가 허방짚던 마음을 붙들어주곤 했던 것을. 마음을 끌고 올라서니 비로소 하늘이, 멀리 낙동강의 운무가 비경으로 발아래 깔린다. 산 정상을 놓고 길은 여러 군데 갈래져 있다. 정상으로 향하기도 하고 다른 산봉우리로도 이어진다. 어느 길을 택하든 조금 더 높고 낮을 뿐 같은 하늘 아래 놓여 있기는 매일반이다. 정상을 오르지 않았다손 치더라도 맑은 공기와 푸른 나무들과 난데없이 들려오는 꿩소리는 누구에게나 예외없다. 조카와 나눠 꽂은 엠피쓰리에서 베토벤의 피아노소나타 제17번 ‘템페스트’ 3악장이 흘러나온다. 격정과 열광과 환희와 고통을 아우른 것이, 이 푸른 오월을, 꼭 우리네 청춘의 한 부분을 닮았다. 볼륨을 조금 높게 올린다. 조카의 얼굴이 잔잔하게 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