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소식지 : 182 호

그대에게 드리는 봄편지

 

  인생의 참 맛

                                 김 현 주

 

  시금치를 데쳤다
  살짝 데쳐야 하는데
  너무 오래 데쳤다
  먹어보니 무르고
  맛이 밋밋하다

 

  한 줄기라도
  담고 데치고 삶고
  적절하게
  건져내는
  때를 알아야
  나물이 맛있다

 

  인생의 참 맛을
  내는 것도


최근에 인상적으로 본 영화가 있습니다. ‘킹스 스피치’(The King’s Speech). 조지 6세라는 왕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지요.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말더듬이 왕이 실존 인물이었다니….
모든 말과 행동에는 반드시 배경이 따릅니다. 그가 말을 더듬게 된 사연도 정신적인 트라우마와 관계가 있었습니다. 어른이 되었지만 위엄 있는 아버지 곁에서 항시 주눅 들어 있었고, 유모에게 키워지는 어린 시절에도 안전을 염려해야 하는 미숙한 약자였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말더듬이라는 상황이 매우 상징적인 느낌이 들었습니다. 말을 더듬는 증상, 어디 우리가 살면서 더듬거리는 일들이 말 하나뿐인가요.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도, 사랑하는 일도 걱정하는 일도, 미워하고 증오하는 일조차도. 마치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사랑과 신뢰와 희망은 늘 그렇게 위태로웠습니다. 사실 너무 깨끗한 공간에 글을 쓰다보면 즐겁고 신명나고, 끝내는 가슴 한 구석이 먹먹해집니다. 아마도 마음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겠죠.
서로 공감할 수 있고, 함께 기뻐할 수 있었던 건 진심 때문이었을 겁니다.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말고, 길게 가자며 마음을 다스려보았지만, 마음의 표정을 들여다볼수록 선명해지는 게 있었지요. 모든 순간은 스쳐가는 바람인 것을. 기쁨이나 슬픔, 원망이나 분노, 즐거움… 내가 느꼈던 감정 하나하나 잘 살펴보노라면 일어났다가 머물렀다가 끝내는 사라졌답니다. 지나가리. 사라짐,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지구별 안에서 거리와는 상관없이 누군가의 행복과 건강을 빌어주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눈물겨운 일인지, 살아갈수록 고마움이 깊어지는 날들입니다. 따뜻하게 포용할 수 있어 또 다른 희망이 되는 봄길, 아름다운 그대 같이 가요!

 

김 현 주
 (괘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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