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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집들이를 한다고 해서 많은 벗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술이 몇 잔씩 돌아간 후 친구네 아이들이 아빠 친구들에게 인사를 한다며 거실로 나왔다. 두 녀석 중 큰 아이가 중학교 1학년이라고 했는데 당돌하게 영어로 인사를 하는 게 아닌가. 우리는 “녀석 참…”이라며 웃어 넘겼지만 아이는 멋쩍게 웃는 우리 앞에서 “아저씨들, 세상에서 가장 긴 영어 단어가 뭔 줄 아세요?”라고 물었다. 모두 어리둥절해 하면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던 중 영문과 출신인 다른 친구가 “너, 그거 아니?”라고 묻자 “그럼요. 아저씨 아세요?”라고 되물었고, 친구는 그 아이에게 “뉴모노 울트라 마이크로 스코픽 실리코 볼케이노 코니오시스”라고 말했다.
‘진폐증’이라는 뜻을 가진 ‘pneumonoultramicroscopicsilicovolcanoconiosis’라는 단어였다. 친구들 앞에서 잘난 체(?)한 아들 때문에 난감했는지 집주인의 얼굴이 붉어졌고 서둘러 아이들더러 방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혹시나 하는 궁금증에 물었더니 친구는 아이들 영어는 일찍 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초등학교 4∼5학년 2년 동안 호주로 유학을 갔다 왔다고 했다. 지금도 그 영어 실력을 유지하기 위해 일반 학원과 회화 학원 하나씩 영어만 두 개의 학원을 보낸다면서. 그런데 잠시 후, 그 중학생 아이가 거실로 나오더니 제 아빠더러 이게 무슨 뜻이냐며 책을 펼쳐보였다. 슬쩍 보니 냉소적, 비판적, 해학적이라는 말을 잘 모른다며 가지고 나온 것이다. 순간 약간 의아했다. 중학교 1학년이 그 정도 단어를 모를까 싶었다. 아이가 들어간 뒤 내가 친구에게 농담으로 “녀석, 영어는 잘하는데 우리말은 꽝이네”하자 친구도 아이가 책을 안 읽어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그 사이 중학생 아이가 다시 나오면서 “아빠, 지금 내 흉봤지?”라고 말했다. 내가 웃으면서 “그래. 네 아빠가 비리를 폭로했다”라고 하자 아이는 “…… 비리가 뭐예요?”라고 또 되물었다. “정말 비리가 뭔지 몰라?” “……네” 그날 집으로 돌아오면서 정말 영어도 좋지만 영어가 아이들의 나이 또래에 맞는 교육 진행과정을 뒤처지게 하는 건 아닌지, 그리고 조기 유학이라는 게 이런 엉뚱한 부작용을 부르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착잡했다. ‘에이, 로또 사서 당첨되면 애들 유학 보낸다는 생각은 관두자. 별로 안 좋아 보이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밤하늘에서는, 부족한 가운데 최선을 다하며 자라는 우리 아이들 눈빛 같은 영롱한 별빛이 소낙비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김 덕 용 (덕포1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