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소식지 : 180 호

詩가 있는 窓 119 - 가난한 내가 나타샤를 사랑해서

 

박 윤 규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전문

 


입춘 지나더니 어디서 눈소식이 들린다. 강원도 땅에는 한길이 넘는 눈이 내렸다 한다. 그런데 이 도시에는 눈이 참 귀하다. 이런 밤에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시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나는 지도를 펼쳐 놓는다. 지도에는 중부지방이 온통 흰색으로 덮여있다. 거기 어디서 너는 내게로 달려오는 것이냐. 내 마음 속에도 가득 흰 눈이 쌓인다. 눈 오는 밤은 참 사랑하기 좋은 밤이다.
내 마음 가득히 눈이 내린다. 내가 처음 너를 만났던 것도 눈 내리는 밤이었고, 그래서 너는 눈의 기억과 함께 어느새 내 안에 와 조분조분 내게 말을 걸어오는 것인데. 우리는 많은 약속을 했었는데, 그러나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 그 약속들은 다 저 눈처럼 하얀 가루로 부서지며 줄줄 흘러내리는 것이다. 지금 네가 내 앞에 없다고 너는 없는 것이냐. 약속의 말들이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약속이 아니라도, 너는 내가 눈치채지 못하는 때에 언제라도 내 안에 와 반짝이고 있는 것이다.
내가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시는 것은 기다림이다. 취한 기운이 내 안에 차츰 쌓여가는 것은 너를 기다리는 내 마음의 온통 간절함이다. 그래, 그러다가 내가 쓰러져 잠든 사이에 밤은 찾아올 것이고, 밤과 함께 너는 그림자도 없이 내게 나타나 내 머리맡에 또 어떤 약속의 말을 남겨두고 사라질 것이고, 그러는 때 멀리서 컹컹 개 짖는 소리도 들리리라. 아침이면 나는 부스스 눈을 떠서, 네가 남기고 간 약속의 말이 온통 하얀 눈으로 세상 가득 덮인 풍경을 보게 될 것이니.
그러리라. 세상 돌아가는 판국이 달갑지 않고 도무지 신통한 구석이라고는 없는데, 나는 세상을 사랑하는 수밖에 없다. 세상 어디쯤에서 네가 사람과 꽃들과 약속들에 어울려 지극히 살아가고 있을 것이기에 말이다. 거기 어느 땅에서 너도 나처럼 혼자 쓸쓸히 앉았는지도 모르겠고, 네가 또 어떤 사랑을 다시 꿈꾼다 하여도 말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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