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소식지 : 173 호

호칭

 

박 태 남
(덕포동)

 

 

아직도 동네에 나가면 나를 ‘통장님’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 사정이 있어 통장직을 그만둔 지 1년이 넘었지만 그들은 금방 나를 알아보고 덥석 손까지 잡기도 한다. 세상사는 일이 거기서 거기지만 나는 통장직을 맡으면서 또 다른 세상의 일면을 보게 되었다. 어떤 이는 집안 속사정 이야기를 하면서 서러운 눈물까지 내비치기도 했다. 그만큼 나를 믿고 편한 상대로 대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그것이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한 두 번의 방문으로 그들이 마음을 여는 것은 절대 아니다. 고령의 기초생활 수급자 한 분은 담당 복지사의 전화방문 조차도 거절했었는데 통장인 나의 도움으로 이제는 그 분과 잘 지낸다고 했다. 처음에는 그 댁을 방문해서 너무 초라한 살림살이에 놀랐다. 혼자 사시는 그 할아버지는 방 한 칸에 부엌이 딸린 집에 살고 계셨는데 방안 가득 일회용 가스가 나뒹굴었고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이런 곳에서 식사는 제대로 하시는지 도저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 때가 한여름이었는데 난 당장 시장에 가서 수박 한 통과 시원한 콩국을 사 왔다. 받기가 내심 미안했던지 “통장님요, 와이캄니꺼 미안쿠로…” 하며 손사래를 치시던 그 분의 미소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부르는 호칭에 따라 참 편한 느낌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나를 ‘언니’라고 부르는 한 여성이 있다. 우리는 만난 지 그리 오래 되지도 않지만 서로를 너무 잘 아는 사이다. 처음에는 예의상 ‘○○씨’라고 했고 그러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람의 내면을 읽을 줄 아는 사람과는 쉽게 마음을 열게 돼 있다. 연장자인 나에게 그녀는 자연스럽게 언니라고 부르고 싶어 했고 나 역시 동생 부르듯 그녀 이름을 부르면서 우리는 순식간에 친분이 두터워졌다.
호칭은 상대를 배려하는 것이기도 하다. 상대를 존경하는 데는 ‘선생님’만한 호칭도 없을 것이다. 선생님이란 호칭이 꼭 교사에게만 지칭되는 것은 아니다. 시답잖은 글을 쓴답시고 긁적거리고는 있지만 그래도 나를 선생님이라 부르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아무 것 아닌 것 같아도 내게는 대접받는 기분이 들어서 좋고 상대에 대한 존경심마저 든다. 부르기 좋고 듣기 좋은 호칭이 분명 있다. 사람도 격이 있듯이 호칭에도 레벨이 있는 듯하다. 식당에 들어가 아줌마라는 호칭보다 사장님이라고 부르면 대접이 달라지는 것 또한 이와 같은 이치가 아닐까?

 

결혼 후 20년을 살아오면서 내게도 참 많은 호칭의 변화가 있었다. 시집와서 처음 시어머니가 집에서 내게 부른 호칭은 ‘새아가’였고 밖에 나가면 남들에게는 ‘새댁’으로 불려졌다. 애들이 학교를 가게 되면서 ‘누구 엄마’가 되었고, 한 때는 잘나가는 ‘사모님’ 소리도 들었다. 그러나 이제 50을 바라보는 내게 ‘아줌마’라는 호칭은 누구 집 강아지 이름처럼 쉽게 불려진다. 그만큼의 많은 세월을 껴안고 산 흔적의 산물이기에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지금은 그 어떤 호칭보다도 내가 즐겨 듣고 싶은 것이 ‘내 이름’ 석 자다. 나이가 들수록 이름을 불러주면 잊고 지낸 시간들이 되살아오는 듯 느껴지기도 한다. 내 20대를 추억하고 싶은 심리가 깔려 있는 건 아닐까? 그것은 어쩜 버선발로 뛰어나가 맞이하듯 닫혔던 마음 빗장을 열 수 있는 호칭이기도 하다.

호칭은 인간관계의 전략이다. 한 개인의 호칭은 기업으로 말하면 ‘브랜드’이기도 하다. 이렇듯 호칭이라는 것이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르게 불리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벽을 쌓기도 허물게도 한다. 한 번 맺은 인연처럼 소중한 것이기도 하다.
나이가 들수록 잊혀져가는 내 이름 석 자에도 영혼이 실리기를 바란다. 내 이름에 꽃이 피는 그 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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