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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윤 규
불행의 대부분은 경청敬聽할 줄 몰라서 그렇게 되는 듯. 비극의 대부분은 경청하지 않아서 그렇게 되는 듯. 아, 오늘날처럼 경청이 필요한 때는 없는 듯. 대통령이든 신神이든 어른이든 애이든 아저씨든 아줌마든 무슨 소리이든지 간에 내 안팎의 소리를 경청할 줄 알면 세상이 조금은 좋아질 듯. 모든 귀가 막혀 있어 우리의 행성은 캄캄하고 기가 막혀 죽어가고 있는 듯. 그게 무슨 소리이든지 간에 제 이를 닦는 소리라고 하더라도, 그걸 경청할 때 지평선과 우주를 관통하는 한 고요 속에 세계는 행여나 한 송이 꽃필 듯 정현종, 「경청」 전문
계절이 봄을 훌쩍 건너뛰었다. 지방선거를 앞둔 이 오월은 말들이 난무하고 있다. 덩치가 크고 화사하고 현란한 말에 가려 낮고 조용하여 우리를 평화롭게 해줄 말은 숨어 버렸다. 봄처럼. 그러고는 우선 여름이 다투어 먼저 앞을 나선 것이다. 때를 기다리지 않고 험담과 비아냥으로 저편을 뭉개고 보는 것이다. 그래야 내가 살 수 있으니까. 승자가 곧 정의요 선善이라 했던가. 결국 사람이 말을 만들고 사람이 그 말에 갇혀 허우적대는 꼴이다. 들리는 것과 듣는 것은 다르다. 듣는 것은 나의 의지요, 들리는 것은 타인의 의지다. 들리는 것에만 막무가내 따라가는 것은 민주사회에 살아가는 주인된 자의 일이 아니다. 내 안과 밖에서 나를 때로 혼돈에 빠뜨리게도 하고 때로 내게 길을 내어주며 고요한 향기로 다가오기도 하는 소리들. 과거, 우리가 희망이라 부르던 그 봄은 아직 우리 곁에 있는 것을. 용기있는 자만이 주인될 자격이 있으며, 지혜로운 자만이 말 아닌 것과 말인 것을 골라 듣게 될 것이다. 누가 당선되고 안 되고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남의 의지에 이끌렸는가 나의 의지에 따랐는가가 중요하다. 키를 낮추면 보통 때 듣지 못했던 많은 소리가 내 주변에 숨어 있다. 너무 높은 곳으로 머리를 두면 허공에 바람만 휘휘 지날 뿐 소리에 무감각해진다. 지혜로운 자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몸을 낮춰 세상의 지극한 목숨들의 얘기를 들을 줄 안다. 세상에 소리는 많으나, 그 너무 지천인 소리 때문에 우리는 오래 귀를 닫고 살아왔다. 벽을 쌓고 문을 닫고 커튼을 내려, 가능한 모든 소통을 닫으며 살았다. 무슨 기분으론지 창을 활짝 열어젖혔을 때, 그 창에 나팔꽃 한 줄기 타고 올라와 나를 바라본다면, 그 창에 새 한 마리 날아와 고운 음색으로 나를 불러준다면……. 사랑의 시작은 소통이다. 귀를 열고 마음을 열고…… 그래서 내 마음과 너의 마음이 길을 내어 서로 닿아진다면 그 길 위로 무수한 사연들이 오가며 꽃을 피우리라. 나 자신만 고립되었다거나, 그래서 불행이니 비극이니 하는 것들은 바로 그 길의 단절인 것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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