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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옥 희 (덕포2동)
며칠 전 어버이날을 맞아 돌아가신 지 한 달 밖에 되지 않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으로 가득한 하루였다. 작년까지만 해도 기억력도 좋고 정신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으신 어머니였는데, 연말 밤중에 방향감각을 잃고 넘어져 고관절염에 걸려 2개월 반의 입원 끝에 결국 극복하지 못하고 8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버린 것이다. 그 기간 동안의 통증과 고통은 어머니로선 이겨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고, 더구나 식사까지 제대로 못하고 가시는 바람에 더욱 한이 맺히는 것이다. 다른 환자들은 웬만큼 아파도 식사는 비교적 잘 해내는데 비해, 어머니의 경우 입원하자마자 입맛이 가신 탓인지 밥도 죽도 미음도 제대로 먹은 적이 없었던 것이다. 한때는 아마 자식들 고생시키기 싫어 고의적으로 식사를 거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는데, 나이 드신 어른들이 이 병에 걸리면 그런 절차를 밟으며 가신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서글프게 했다. 왜 너무나 착하고 선하게 살아온 친정어머니께 이런 몹쓸 병을 주어 마지막에 고통을 주면서 생명을 앗아 가는지 생각하면 신이 원망스러운 것이다. 내가 보아온 어머니는 한평생 남에게 싫은 소리나 폐를 끼치는 행동을 하지 않았으며, 늘 인자하고 선하고 착하게 살아 주위 사람들로부터 진짜로 법이 없어도 살 인물로 여겨졌었다. 크게 가진 것은 없어도 노인들끼리 만나면 다정다감하며 매사 일에 앞장섰으며, 회식을 하면 가끔 먼저 계산을 하면서도 결코 티를 내거나 자랑하지 않으셨다. 평소에 용돈을 아껴 명절이나 방학 때에 손주 녀석들이 오면 꼬깃꼬깃 접어 잘 간직했던 돈을 아낌없이 주었던 분이다. 남편과 내가 가끔 회식을 가자고 해도 그냥 반찬거리를 사 와서 집에서 먹자며 근검절약을 몸소 실천하셨으며, 어떤 모임에서 남은 음식이나 음료수를 챙겨와 우리들에게 주시기도 했다. 일찍이 여섯 살 때 얼굴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혼자 3남매 키우느라 얼마나 뼈 빠지게 고생하고 힘들었는지는 이제 자식을 거의 다 키운 중년인 이 딸이 생생히 기억할 수 있다. 자식들을 위해 손수 밥 짓고 빨래를 손으로 다 하셨으며, 군부대에서 군무원으로 일하시기도 하셨다. 얼마 안 되는 봉급을 받아 그래도 자식들 공부시키고 결혼까지 시켜 주신 은혜 정말 어떻게 갚을까 망설여 왔는데 갑작스레 연말에 고관절염에 걸리는 바람에 효도할 기회도 갖지 못한 채 돌아가 버렸으니 얼마나 원통하고 한스런 일인가. 당일 아침에 남편과 함께 정관에 있는 추모공원 납골당에 가서 화분을 놓고 묵념을 올리고, 차례상도 차려놓고 절도 하면서 북받쳐 오르는 눈물을 맘껏 흘렸다. 정말 어버이 살아 계실 제 효도를 하라는 옛 선현들의 말씀도 있는데 제대로 보살펴 드리지 못한 것이 너무나 억울하고 한이 맺혀 버렸다. 비록 육신은 돌아가셨지만 어머니의 자태와 정신은 내 마음 속에 영원히 기억되고 살아 있을 것이다. 늘 남편도 살아 계실 때 한번이라도 더 찾아가고 반찬이라도 해 드려야 한다고 신신당부까지 했지만 나의 나태함과 성의 부족으로 그렇게 해 드리지 못한 것이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간 어머니께 통탄이 되어 버린 것이다. 어머니! 이렇게 훌륭하게 잘 키워 주셨는데 저는 아무 것도 해 드리지 못하는 불효자가 되었으니 부디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고 늘 마음 속 깊이 어머니를 간직하고 있겠습니다. 부디 이승에서의 모든 시름 다 잊으시고 이제 저승에서는 아무런 염려 말고 편안히 잘 지내주시길 비옵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