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소식지 : 171 호

어떤 여고생을 보며…

 

 

 

강 명 순
(괘법동)

 

 

며칠 전 동생을 맞이하러 고속버스 터미널에 가기위해 버스를 탔는데, 한 여고생이 내 곁을 지나가다 실수로 구두를 밟았다. 깨끗이 닦여진 내 구두에 그 여고생의 흙 묻은 운동화가 도장을 꽉 찍어줬다.
순간 여고생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어머, 죄송해요”를 연발했고, 나는 사람이 많이 탄 버스의 좁은 공간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괜찮아요”라며 안심시켜줬다.
그런데 잠시 후 발등에 약간 이상한 느낌이 들어 내려다봤더니, 그 여고생이 화장지를 꺼내 내 구두에 묻은 운동화 자국을 지우고 있는 게 아닌가.
순간 내가 더 놀라 얼른 발을 빼며 괜찮으니 그러지 말라고 이르며 한동안 낯이 뜨거워짐을 느껴야만 했다. 마치 버스 안의 승객들이 내가 무척 불쾌하게 반응해 그 여고생이 내 구두를 닦게 만든 것 같은 오해를 가질까봐…. 그리고 본의 아니게 여고생에게 엉뚱한 고생을 시킨 듯해서 터미널까지 가는 동안 내내 그 일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그리고 한동안 많은 생각이 들었다.
사실 차 안에서 실수로 밟은 다른 사람의 신발을 누가 닦아줄 생각을 하겠는가. 또한 그리하지 않는다고 해서 구두를 밟은 사람을 욕하지도 않고, 구두를 밟힌 사람 역시 살짝 속상하긴 하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잊고 말 일이다.
그러나 그 여고생은 가정에서 부모님으로부터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며 살지 말라”고 배웠을 것이다. 그 폐 끼침에 미안한 나머지 허리를 숙여 애써 내 구두를 닦은 것이다.

문득 오래전 일본 고베 대지진 때 신문에 보도된 일이 생각났다.
엄청난 지진으로 인해 며칠간 흙구덩이에 갇혀 있다가 기적적으로 구출된 여성이 있었다. 그때 TV에 보도된 그 여성의 “쓰미마셍”이라는 첫마디는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있다.
구조대에 의해 기적적으로 구출된 그 여성은 건물 구덩이 밖으로 나오면서 누구나 예상했던 “(구출해 줘서) 감사합니다”가 아니라 “(나를 구출하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수고를 끼쳐 드려서) 죄송합니다”였다. 일본말로는 “쓰미마셍”이다. 쓰미마셍은 폐 끼쳐 죄송하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 날짜에 보도된 신문의 사설에는 이런 놀라운 민족성이 오늘날의 일본을 일으킨 힘일지도 모른다고 썼다. 저들의 저력이 무섭기도 했지만 솔직히 부러웠다.

살아가면서 “살갑다” 혹은 “친절하고 상냥하다”는 말을 많이 주고받는다. 상냥하고 친절한 것은 상대방을 무척 기분 좋게 한다.
우리 사상구민, 더 나아가 부산시민 모두가 이웃을 대할 때 항상 웃고, 상냥하고 친절하고 살갑게 대하는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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