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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윤 규
텅 빈 것만이 아름답게 울린다 내 마음은 첼로 다 비워져 소슬한 바람에도 운다 누군가 아름다운 노래라고도 하겠지만 첼로는 흐느낀다 막막한 허공에 걸린 몇 줄기 별빛같이 못 잊을 기억 몇 개 가는 현이 되어 텅 빈 것을 오래도록 흔들며 운다 다 비워져 내 마음은 첼로 소슬한 바람에도 온몸을 흔들어 운다 나해철, 「내 마음의 첼로」 전문
내가 몇 자락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행복이다. 그 몇 안 되는 기억들로 나는 늦은 밤 깨어 있거나 까닭없는 슬픔에 눈가를 적시기도 한다. 누구는 그 아슬한 기억들이 잘게 부서져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될 것이라 하고, 누구는 그 슬픔이 물처럼 흐르다가 나무들 물관을 타고 올라 봄이면 새움으로 돋으리라 했다. 좀더 가볍게 살기 위하여, 풀씨처럼 한번 바람에 날아가 보기 위하여 내 가진 것―탐욕과 희망과 미련같은―을 다 덜어내었음에도 나의 무게는 언제 보아도 그대로이다. 비우고자 산을 오르면 산봉의 높이만큼 또 높아져야겠다는 생각이 앞을 서고, 온순한 시간 속에 들어 책을 펼치면 내 안에 알지 못할 언어들만 가득해지는 것이다. 그래, 아무리 기를 써 퍼내어도 비워지지 못할 마음자리다. 차라리 거기 아득한 기억 하나쯤 묻어두고 살아가는 것이 인간적이 아니랴. 나의 무게를 가늠하며 나는 이런 위안이라도 기웃거려 보는 것이다. 그 끊어질 듯 아슴한 기억 하나가 홀로 나를 깨어있게 하고, 세상 속으로 나를 이끄는 힘이 되는 것을. 누가 내 푸른 힘줄을 잡아당겼다가 놓아버릴 때, 나는 어떤 음으로 울어야 할까? 봄밤 창에 와 부딪히는 바람의 저음과도 같은? 아니면 이른 새벽나절 누구보다 먼저 길을 나설 때 아스팔트 위로 통통 튀어오르는 고음의 햇살과도 같은? 그게 무슨 소리로든지 한번 울어라도 주면 좋겠는데…… 혹여나 내 감정이 바닥이 나서 울 줄도 모르는…… 도무지 내 삶의 무미건조 같은…… 소통이다. 나는 지금 소통을 생각한다. 첼로든 무엇이든 그것이 하나된 의미를 가지기 위하여는 끊임없이 다른 어떤 것과의 소통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나뭇잎이 홀로 흔들리는 법이 없고, 어둠마저 홀로 어두워가는 법이 없다. 내 마음이 흔들리거나 어둠처럼 안으로 더욱 깊어가기 위하여 나는 어떤 것에게 손을 내밀어야 할까. 그래, 내 삶의 끈부터 바짝 조여야겠다. 첼로의 잘려나갈 듯 애절한 소리 말고라도 내 삶의 끝에서 그저 ‘둥∼’하며 둔탁한 여음이라도 흘려보내자면 내 안이 좀더 비워지고 맑아져야겠다. 그래, 어떤 것의 손길이 내게로 와 나를 두드릴 때, 비로소 그에 화답하리라. 화답하게 되리라. 굳은살의 허물을 벗겨내듯 이 오만이나 위선 한 줄기 벗어버리고…….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