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소식지 : 168 호

詩가 있는 窓 107 - 그대에게 길을 내다

 

 

 

박 윤 규

 

강아지똥이 얼어붙어 고요하다
개밥그릇도 얼어붙어 고요하다
천지연 폭포도 얼어붙어 고요하다
새벽이 지나도록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꼭대기에 앉아 있는
새 한 마리도 날아가다가 얼어붙어
고요하다
             정호승 시, 「고요하다」 전문

   
고요합니다. 세상에 몸으로 태어난 것 가운데 천성적으로 고요하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유월의 하늘에 온 세상은 떠들썩해 보이지만, 그 역시 고요로 가는 길목입니다.
이 땅에 파다하게 눈이 와 보면 압니다. 하늘을 나는 새들, 지상을 버텨선 나무와 지천인 마른 풀들, 바위와 흐르는 물조차도, 그 위를 잠시 스쳐가는 바람조차도 다들 고요롭습니다. 모두들 한 바가지씩 고독을 머리에 이고 불쌍하게 살아들 갑니다. 그 고독이 깨어지면 와장창 하고 설움이 몰려올 것이니, 그 고독, 깨어지지 않게 조심조심 살아갑니다.
겨울은 사물들의 옷을 벗겨내어 실체로만 살게 합니다. 헐벗은 나무뿐 아니구요, 사람들도, 그 사람들의 작은 희망이나 절망까지도 이 겨울은 목메이게 합니다. 미황迷徨이라 하던가요? 하늘이 그 마지막 빛을 거둘 때 눈시울이 가득 붉어지던 그 서러운 빛깔 말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서러운 것들은 지나가는 것에 불과한 것이지요. 결국에는 너도 나도 다 고요입니다.
이 겨울에 온통 하얀 눈이 내리면 그 눈 사이로 모든 것들은 길을 냅니다. 참 어려운 길이지만요, 서로에게로 낸 길은 눈부시게 아름답습니다. 햇살들이 토닥토닥 어린애들처럼 뛰어다니는가 하면, 미처 길을 나서지 못한 존재들은 향기를 보내어 서로를 인사하고 안부를 묻습니다.
오솔길이든 도시의 골목길이든, 그렇게 서로를 소통하는 길을 걸으면 여러 향내가 뒤섞여 나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향내만이 아니라 온갖 아름다운 소리까지도 함께 흘러다니는 그런 길입니다.
낯선 세상의 길을 가다 우연히 만난 아름다운 사람에게로 편지 한 장 쓰고 싶은 밤입니다. 잘 지내고 있는가요? 그곳의 날씨는 지금 어떻습니까? 당신은 지금 무슨 꿈을 꾸고 있나요?
허공에도 길을 내어 한 나무가 다른 나무와 손을 잡는 것을 봅니다. 얼었던 땅이 녹으면서 작은 물길이 또 새로 생겨났습니다. 새들은 언 하늘을 지저귀며 서로에게 노래의 길을 틉니다.
고요한 것들은 아름다운 마음의 길을 준비하는 중입니다. 당신도 아마 같은 꿈을 꾸고 계시겠지요? 누군가를 사랑하는 꿈. 아주 오래도록 달콤한……, 불멸의 사랑 같은 것 말입니다. 저 하루를 넘기는 노을의 붉은 빛은 어둠에게로 길을 내어주고, 사람들의 집은 창마다 불을 밝혀 이쪽과 저쪽의 경계를 지웁니다. 마치 등대처럼, 서로에게 아름다운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다시 새날이 돋으면, 당신과의 귀한 인연을 생각하겠습니다. 인드라의 그물 말입니다. 세상은 아무래도 서로에게로 가는 많은 길들이 얽히고설키면서 잘 버무려져야 제맛이지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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