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홍 윤(모라3동)
만물 중에 흐르는 것은 물 위에 떠다니는 부초(浮草)만은 아니다. 초승달이 보름달이 되고, 계절 또한 교차하듯, 인생도 아이에서 소년으로 다시 청춘에서 열렬히 살아가다 이윽고 노년기를 맞는다. 내일이면 오늘은 이미 과거가 된다.
절망에 부닥뜨리면 그 굴레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라 좌절하고, 행복이 도래하면 그 행복이 영원으로 이어질 것처럼 여기지만, 세상사는 그리 만만하지 않다. 하여 인생은 영원한 절망도 행복도 아니라고 유추한다.
몇 해 전 교직(敎職)에 있는 친구 B가 여름방학을 맞아 선친의 묘소를 찾아뵌 뒤 부산에 사는 친구들을 만나러 왔었다. 먼저 다른 친구들을 만나 그들과 함께 우리 동네까지 왔는데, 친구 중 하나가 서울에서 B가 왔으니 아파트 입구로 나오라는 것이었다. 목전까지 와선 왜 나더러 내려오라 하느냐고 했더니 “그냥”이라며 짧게 응수했다.
그들의 내심은 12평 좁은 아파트에 사는 내게 B의 방문으로 자존심이 추락할 것이란 배려였겠지만, 그들의 지나친 선심이 외려 내 마음에 생채기를 남기리란 생각은 미처 못했을까?
B는 그때 50 중반이었는데 염색하지 않은 머리칼은 은백이었고, 또래에 비해 겉늙어 보였다. 그러한 모양이 마음 한 켠에 씁쓸함으로 남았지만 오랜만의 해후에 들떠 우린 늦여름의 해변에서 희뿌연 새벽까지 마음 깊은 곳에 간직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들을 하나씩 쏟아내었다.
그 후 B완 간간이 안부를 물으며 지냈는데, 지난해 가을 동생 집에 왔던 길에 어디 한 번 만났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난 서슴없이 우리 집으로 오라 했다. 그 해 여름보다 더 망가진 모습으로 나타난 그에게 “집이 좁아 답답하지?”라고 하자 전혀 아니란 반응이었다. 부부가 교직에 오래 있었던 까닭에 정원이 잘 꾸며진 저택에서 살 텐데, 전혀 내색을 하지 않는 그가 미덥고 한편 고마웠다.
조촐한 저녁식사를 끝낸 뒤 B는 외기(外氣)를 쐬자 했다. 낙엽이 흩날리는 아파트 주변을 산책하다 벤치에서 좀 쉬어가자 했다. 켜켜이 쌓인 낙엽을 발길로 모으던 그는 불쑥 “삶은 고통 그 자체일까?”라는 뜬금없는 어휘를 비탄 섞인 음색으로 내뱉었다. 그 해 여름부터 예감했던 우수와 그늘이 드디어 자체를 드러내는구나! 라고 생각하면서도 “인생을 다 산 것처럼 웬 허무주의냐”며 되도록 그의 마음을 긁지 않으려 가볍게 응수했다.
하지만 그는 결심한 듯 어느 친구에게도 실토하지 않았던 가정사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남매를 두었는데 아들 녀석은 명문대를 졸업하고서도 한 직장에 정착하지 못해 부모에게 의존하려 하고, 여식(女息)은 어인 일인지 중3학년 때부터 정신질환 증세를 보여 경기도 어느 수녀원에 맡겨진 상태라 했다. 자신도 지난 봄 명예퇴직을 한 후 쉬고 있단다. 항시 울적해 전국의 산을 유랑하며 가정사를 잊으려 한다는 것이었다. 일순 내 머리 속은 팽이가 빠르게 돌고 있는 것처럼 어지럼증을 느꼈다. 물질이 넉넉하면 정신의 고통이 뒤따르는 법일까?
이튿날 아침 베란다 너머의 낮은 산에서 새들이 지저귀고, 알록달록 단풍진 전경을 멍하니 바라보던 B는 “참 살기 좋은 곳이구나!”라며 독백처럼 뇌까렸다. “그럼, 여기서 며칠 쉬어가라”했더니 상경하는 길에 여식을 만나고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마 정기적인 면회 날짜가 도래한 모양이었다.
얼마나 삶이 고통스럽기에 자신의 방 하나 크기 만한 이곳에서 그는 평정을 느끼는 것일까? 떠나는 그의 뒷모습에서 난 뼈저린 연민을 느꼈고, 초라한 나의 집에서 머물다간 그가 한없이 고마웠다.
어느 친구는 내가 사는 주위 환경이 좋지 않으니 자식들 교육을 위해 그곳에서 탈피하라며 권고했다. 하지만 그의 기우와는 달리 자식들은 어긋난 길을 가지 않고 대나무처럼 올곧게 성장했다. 그의 눈에 비친 이곳이 그토록 낮은 삶의 군락지로 여겨졌을까? 타 지역의 사람들이 으레 추측하는 만큼 이곳은 그리 얄궂지 않다. 새벽별을 보고 일터로 나가 어스름 때 귀가하는 바지런한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 그들의 자녀들은 지금 공무원을 비롯해 공기업이나 산업현장의 기술자가 되어 어엿한 사회의 일꾼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한 가정들은 이미 넓은 집으로 이사를 한 지 오래이다. 그러기에 ‘가난은 대물림’이란 말을 난 부정한다. 간혹 낮술에 취해 추태를 보이는 경우도 있지만, 소수를 보고 다수를 비하하는 건 지나친 편견이며 오류이다.
다닥다닥 붙어 옆집 노인네의 자지러지는 기침소리에 잠을 설친 때도 한 두 번이 아니지만 이웃의 숟가락 개수를 세고, 길흉사를 함께하는 정감어린 아파트는 어느 동네에서도 보기 힘든 장면이다.
더러는 이곳에 사는 걸 감춘다 하지만, 난 누가 물어도 “모라주공아파트”라 대답한다. 빈곤은 생활에 약간의 불편을 주겠지만 그것이 수치이거나 죄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 사는 내음이 물씬 풍기고, 천혜의 자연에 둘러싸인 맑은 대기 속에 아늑한 보금자리를 제공해준 정부에 늘 감사함을 느낀다.
좁은 공간이 다소 불편하다면 열심히 노력해 사는 동안 언젠가는 넓은 공간으로 옮길 행운이 주어지리라 믿는다. 세상엔 영원한 소유가 없듯이 꿈과 희망 아래 살아가노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