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 순 도
(모라3동)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던 중 며칠 전 신문기사에 ‘장사를 하다가 빚을 진 주부가 두 자녀와 함께 아파트에서 투신 자살했다…’는 내용이 눈에 들어와 내 가슴을 쿡쿡 찔렀다.
그날 밤, 벌써 40여 년 전의 일이 떠올라 잠이 오지 않았다.
부모님은 그 옛날에 나일론 옷 장사를 아주 크게 하셨다. 돈도 많이 벌었는데 호사다마였다.
잘 나가던 옷가게에 불이 나서 전 재산이 잿더미가 되고 우리집은 알거지가 됐다.
아버지는 빚쟁이들을 피해 집에서 나가셔서 들어오지 않았다.
우리는 교회 지하실과, 전봇대에 쇠사슬로 묶어두고 간 포장마차 안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배가 고프다고 훌쩍이는 동생을 보며 엄동설한 어느 날, 어머니는 무언가를 결심한 듯 우리더러 산에 가자고 하셨다.
산에는 100일 기도를 하러 가는 사람들이 놓고 간 제사 음식이 있다며 그걸 얻어먹자고 했다.
어린 우리는 뭔가를 실컷 얻어먹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엄마 말을 믿고 나섰다.
그런데 엄마와 산 속을 아무리 가도 100일 기도를 하는 무당이나 인적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나는 갑자기 어린 마음에 공포가 밀려왔다. 그리고 엄마의 표정에서 그걸 읽을 수 있었다.
나는 산 중턱에서 엄마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울부짖었다.
“엄마, 나 죽기 싫어! 나 살려줘…”라고.
갑자기 악을 쓰는 딸을 본 엄마는 예상치 못한 내 행동에 흠칫 놀라시며 그대로 땅바닥에 주저앉아 꺼이꺼이 대성통곡을 하셨다.
다섯 살배기 동생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눈만 멀뚱멀뚱했고, 눈이 녹아 질척거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펑펑 울은 엄마와 나는 흙투성이가 된 채 산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다음날. 어머니는 무작정 시장에 갔다.
그리고 생면부지의 어느 옷가게 주인에게 다가갔다. “아저씨, 제가 아까부터 가게 앞에 서서 보았는데요. 옷을 돌아다니며 팔면 더 많이 팔 수 있을 거 같아요. 나한테 그걸 떼어 주신다면 내다 팔게요. 그런데 돈이 한푼도 없어요.”
옷가게 아저씨는 물끄러미 어머니를 쳐다보더니 내복과 양말, 어른 점퍼를 한 보따리 싸주며 팔아보라는 말 한마디만 하신 채 어머니 머리에 올려 주었다.
그렇게 어머니의 옷 장사는 시작되었다.
이미 옷 장사를 해본 엄마는 수완이 좋았다. 그게 우리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엄마는 그 옷가게에 취직이 됐고 나중에는 동업자가 되었다. 얼마 후 아버지도 돌아오셨다.
지금 너나 없이 다들 힘든 시기다.
‘희망’이란 항시 우리 뒤에 있으며, 누구에게나 똑같이 찾아오는 듯하다.
이럴 때일수록 그걸 놓치지 않고 부여잡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