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소식지 : 162 호

‘희망’이라는 끈

권 순 도
(모라3동)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던 중 며칠 전 신문기사에 ‘장사를 하다가 빚을 진 주부가 두 자녀와 함께 아파트에서 투신 자살했다…’는 내용이 눈에 들어와 내 가슴을 쿡쿡 찔렀다.

그날 밤, 벌써 40여 년 전의 일이 떠올라 잠이 오지 않았다.

부모님은 그 옛날에 나일론 옷 장사를 아주 크게 하셨다. 돈도 많이 벌었는데 호사다마였다.
잘 나가던 옷가게에 불이 나서 전 재산이 잿더미가 되고 우리집은 알거지가 됐다.
아버지는 빚쟁이들을 피해 집에서 나가셔서 들어오지 않았다.

우리는 교회 지하실과, 전봇대에 쇠사슬로 묶어두고 간 포장마차 안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배가 고프다고 훌쩍이는 동생을 보며 엄동설한 어느 날, 어머니는 무언가를 결심한 듯 우리더러 산에 가자고 하셨다.
산에는 100일 기도를 하러 가는 사람들이 놓고 간 제사 음식이 있다며 그걸 얻어먹자고 했다.

어린 우리는 뭔가를 실컷 얻어먹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엄마 말을 믿고 나섰다.
그런데 엄마와 산 속을 아무리 가도 100일 기도를 하는 무당이나 인적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나는 갑자기 어린 마음에 공포가 밀려왔다. 그리고 엄마의 표정에서 그걸 읽을 수 있었다.

나는 산 중턱에서 엄마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울부짖었다.

“엄마, 나 죽기 싫어! 나 살려줘…”라고.

갑자기 악을 쓰는 딸을 본 엄마는 예상치 못한 내 행동에 흠칫 놀라시며 그대로 땅바닥에 주저앉아 꺼이꺼이 대성통곡을 하셨다.
다섯 살배기 동생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눈만 멀뚱멀뚱했고, 눈이 녹아 질척거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펑펑 울은 엄마와 나는 흙투성이가 된 채 산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다음날. 어머니는 무작정 시장에 갔다.
그리고 생면부지의 어느 옷가게 주인에게 다가갔다. “아저씨, 제가 아까부터 가게 앞에 서서 보았는데요. 옷을 돌아다니며 팔면 더 많이 팔 수 있을 거 같아요. 나한테 그걸 떼어 주신다면 내다 팔게요. 그런데 돈이 한푼도 없어요.”

옷가게 아저씨는 물끄러미 어머니를 쳐다보더니 내복과 양말, 어른 점퍼를 한 보따리 싸주며 팔아보라는 말 한마디만 하신 채 어머니 머리에 올려 주었다.
그렇게 어머니의 옷 장사는 시작되었다.
이미 옷 장사를 해본 엄마는 수완이 좋았다. 그게 우리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엄마는 그 옷가게에 취직이 됐고 나중에는 동업자가 되었다. 얼마 후 아버지도 돌아오셨다.

지금 너나 없이 다들 힘든 시기다.

‘희망’이란 항시 우리 뒤에 있으며, 누구에게나 똑같이 찾아오는 듯하다.

이럴 때일수록 그걸 놓치지 않고 부여잡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OPEN 출처표시, 상업용금지, 변경금지 :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제4유형)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4유형: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목록